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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 지방기념물 제30호
지정일 : 1976. 4. 2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소유자 : 국유
규모 : 호벌치 일원
시대 : 조선 선조30년(15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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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벌치 전적지는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이 지방의 의병들이 왜군을 맞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항전지이다.
1592년 임진왜란을 통해 호남지역을 손에 넣지 않고서는 전쟁에서의 승리가 어렵다는 것을 느낀 왜군은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주력부대를 전라도에 투입하였고, 이에 대항하여 도내 각처에서는 의병들의 항전이 이어졌다.
이미 임진왜란 때에도 흥덕에서 의병을 일으킨 야수(野未) 채홍국(蔡弘國)이 중심이 되어 동지들을 규합하고 흥덕 남당의 회맹단(會盟壇)에서 삽혈동맹(血同盟)을 맺은 뒤 흥덕과 부안에 진출한 왜군을 이 곳 호벌치에서 맞아 4월 중순부터 1주일간에 걸쳐 처절한 전투를 벌였으나 채홍국 3부자는 물론 이 전투에 참여한 의병 모두가 전사하였다.
이 전투는 선비·농민·천민·승려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이 하나로 뭉쳐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겠다는 호국정신이 잘 나타난 의병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큰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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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 지방기념물 제20호
지정일 : 1974. 9. 27
소재지 :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시대 : 삼국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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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금산성은 주류(周留)·위금암(位金岩)산성 혹은 울금바위산성으로도 불려지고 있다.
성곽 안에서 백제시대의 유물에서부터 조선시대의 유물들까지 발견되고 있어 오랫동안 사용되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성곽은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주변 산봉우리와 함께 아래의 산골짜기를 감싸는 포곡식(包谷式) 산성이다.
성벽의 둘레는 약 3,960m에 달하며 높이는 3m내외로써 인근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성곽이다.
성곽의 북쪽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북장대(北將臺)가 있고, 남쪽에는 남장대(南將臺)가 있다.
성의 내부에는 묘암사(妙岩寺) 터와 함께 많은 건물지들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백제가 멸망한 후 일본에 가 있던 부여풍(扶余豊)을 받들어 백제 부흥군이 663년 최후의 항전을 벌였던 주류성(周留城)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 출처 : 부안군청 |